일제 강점 후 서울면적 3배의 갯벌이 간척·매립으로 사라져

김기범 기자, 경향신문

쪼그라든 갯벌도 위험하다

일제강점기 이후 한국 갯벌의 역사는 간척과 매립, 두 축의 파괴로 점철돼 있다. 경제논리 앞에 줄어들어 갯벌 면적은 사람의 손을 타기 전과 비교해 절반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 서남해안에 ‘세계 최고’ 자리를 빼앗길까 두려워하던 유럽 와덴해 갯벌국립공원 측이 언젠가부터 마음을 놓았다는 얘기가 들려올 정도로 한국의 갯벌은 원형을 잃었다.

바닷물이 빠지면서 넓게 드러난 인천 영흥면 선재도와 목섬(무인도) 사이의 갯벌. 모래와 개흙이 섞여 있고 물도 약간 고여 있는 갯벌에는 갯지렁이가 들어가 있는 구멍들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뚫려 있다. 김기범 기자

학자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일제강점기에 대규모 간척·매립 사업이 시작되기 전 한국의 갯벌 면적은 4000~4500㎢가량으로 추산되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 해양수산부가 발표한 갯벌 면적은 55~62% 수준인 2487.2㎢로 급감했다. 서울 면적(605.28㎢)의 3배가량이 간척과 매립으로 사라진 셈이다

국내에서 처음 간척이 시작된 것은 고려시대로 알려져 있다. 고려·조선 시대의 간척은 농경지를 만들기 위한 소규모 사업이었다. 대규모 간척사업은 일제강점기부터 시행됐다. 특히 서해안에서는 본래 해안선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광범위한 간척사업이 벌어졌다. 목포·군산 등지의 아파트·빌딩 단지는 불과 몇십년 전까지 바다였다는 얘기도 곧잘 듣는다.

일제강점기에 사라진 갯벌은 약 569.3㎢, 해방 후 1980년대 중반까지 사라진 갯벌은 약 530㎢에 달한다. 갯벌 면적이 가장 크게 감소한 시기는 공식적인 정부 통계가 시작된 1987년부터 1997년 사이다. 새만금 208㎢, 시화지구 180㎢, 남양만 60㎢, 영종도 신공항 45㎢, 송도신도시 16㎢ 등 모두 810.5㎢의 광활한 갯벌이 파괴됐다. 특히 이 시기에 매립·간척 사업이 집중적으로 이뤄진 경기·인천 지역에서는 341㎢의 갯벌이 사라졌다. 이로 인해 1987년까지만 해도 전남과 비슷했던 경기·인천의 갯벌 면적은 2013년 현재 전남의 83.9% 수준으로 줄어든 상태다.

대규모 매립과 간척은 서해안의 해안선까지 크게 변화시켰다. 교과서에 톱니 모양으로 나오던 리아스식 해안은 잘 보전된 곳을 찾기 힘들다. 국립환경과학원 자료를 보면, 대형 방조제 건설과 간척사업으로 해안선이 직선화돼 서해안의 해안선 굴곡도는 1910년대 9.70에서 5.24로 단순해졌다. 해안 굴곡도는 해안 길이를 직선 길이로 나눈 뒤 1을 뺀 수치를 뜻한다. 1910년대만 해도 서해안이 남해안보다 복잡한 해안선을 지니고 있었지만, 현재는 남해안 굴곡도가 7.89로 서해안보다 더 높다.

100년 넘게 이어진 갯벌 잔혹사는 현재도 진행형이다. 정부나 대기업의 매립·간척 사업은 과거보다 규모가 줄어들었을 뿐 여전히 전국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해수부가 인천 영종도 갯벌에 4.16㎢ 넓이로 조성 중인 준설토 투기장은 대표적인 갯벌 파괴 사례다. 인천신항 항로를 확보하기 위해 준설한 흙을 버리면서 2011년부터 2021년까지 정부·지자체·기업이 매립하려는 공유수면 면적은 2.32㎢에 달한다. 1990년부터 2012년까지 한국에서 매립된 공유수면(162.8㎢)에 견주면 적은 면적이지만, 지금도 갯벌 매립은 계속되고 있는 셈이다.

갯벌은 흔히 ‘바다의 백두대간’으로 불린다. 그럼에도 연안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된 갯벌은 현재 12곳(218.9㎢), 전체 갯벌 면적의 8.8%에 불과한 상태다.

갯벌이 사라지는 것은 철새를 포함한 해양생태계에 심각한 악영향을 끼친다. 전문가들은 새만금 개발사업 후 자취를 감춘 도요·물떼새가 수십만마리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인천 영종도에 조성 중인 준설토 투기장은 멸종위기인 저어새 번식지와 지나치게 가깝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갯벌 면적이 쪼그라들면서 게·조개 등 갯벌을 터전으로 삼는 생물이 급감했고, 갯벌에서 생산되는 수산물 양도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갯벌을 터전으로 삼아 생활을 영위하던 어촌 공동체가 파괴된 사례는 셀 수 없을 정도다. 어촌에서 갯벌은 농촌에서 논밭이나 다름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갯벌이 사라진 영향에서 인간도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다.

늦었지만 다행히, 환경단체와 학계뿐 아니라 정부 내에서도 서남해안 갯벌을 이대로 둬서는 안된다는 자성의 목소리와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해수부는 지난 8월 말 사실상 국내 갯벌의 첫 보전계획이라 할 수 있는 ‘갯벌자원화 종합계획’을 발표했다. 해수부 계획은 갯벌 복원체계를 마련하고, 복원사업을 확대해 생태관광을 활성화하며, 갯벌 어장의 환경 개선·관리 기준을 설정하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

지난해 10월에는 환경부가 지자체·해수부·환경단체의 의견을 받아들여 충남 태안·서산의 가로림만에 조력발전댐을 건설하겠다는 산업통상자원부 계획을 반려하기도 했다. 조력발전댐 건설 시 이 지역의 갯벌 면적은 68.2㎢에서 59.6㎢로 줄어든다. 해수부는 충남 가로림만, 인천 무의도, 전남 신안군 비금·도초도, 경남 사천시 광포만 등을 새 연안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하는 안을 검토하고 있다. 해양국립공원이나 해양보호구역의 틀이 거론되고, 충남도는 지자체 차원의 역간척 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정부와 지자체 모두 갯벌 보호 정책이 시급하다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지만, 국제적 잣대로 보면 갈 길이 멀고 이제 걸음마를 뗀 수준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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