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근본대책은 철새에게 잘해주는 것” 두루미와 공생하는 철원 농민들

2016년 12월 15일
김기범 기자, 경향신문

강원도 철원 민통선 내의 재두루미들 모습. © 김기범기자, 경향신문

“AI 근본대책은 철새에게 잘해주는 것” 두루미와 공생하는 철원 농민들 – 김기범 기자의 살아남아줘서 고마워(25)

“두루미, 재두루미들 때깔이 예전보다 좋아보이네요?” “건강 상태도 이전보다 좋아 보입니다!”

강원도 철원 민통선 내의 재두루미들 모습. © 김기범기자, 경향신문

지난 13일과 14일 경향신문을 포함한 언론사 취재진, 철원 농민, 철원군청 관계자, 전문가, 6사단 관계자 등이 강원도 철원 민통선 내 두루미 서식지역을 둘러보면서 감탄하며 나눈 대화 내용 중 일부입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틀에 걸쳐 철원을 둘러본 것은 두루미와 공생하기 위한 노력을 실천하고 있는 철원 농민들 덕분에 철원을 찾는 두루미들이 늘어나고, 두루미들의 상태도 좋아지고 있다는 내용을 취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강원도 철원 민통선 내의 재두루미들 모습. © 김기범기자, 경향신문

철원 농민들이 자발적으로 민통선 내 평야지대의 논에 겨울에도 물을 빼지 않는 ‘무논’을 유지하고, 볏짚을 깔아주는 등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 결과 한국 중부지대를 거쳐 일본 이즈미로 월동하러 가던 두루미, 재두루미 중 상당수가 철원에 그대로 남아있다는 것이 학술적으로 증명이 됐습니다. 사계절 먹이를 주면서 철새인 두루미 수천 개체가 텃새처럼 서식하는 이즈미에서도 올해 조류인플루엔자(AI)가 집단 발병해 국제적으로 두루미 개체 수 감소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는 가운데 농민들의 노력으로 서식지가 분산되는 효과가 나타나고 있는 셈입니다.

농민들이 볏짚을 존치하거나 볏짚을 뿌려주면서 논에는 겨울에도 낙곡이 남아있어 두루미의 먹이 공급원이 되고 있습니다. 외부보다 온도가 높은 볏짚 내부에 거미 등의 곤충이 모이면서 역시 두루미들이 단백질을 얻을 수 있도록 해주기도 합니다. 환경부는 철새들을 위해 볏짚을 외부에 판매하지 않고 존치하는 농민들에게 생물다양성관리계약을 통해 일정 금액을 지급해주는데 환경부가 지원하는 넓이는 약 208.7ha(헥타아르)입니다. 주민들이 스스로 두루미와 공생하고, 지역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한 노력 차원에서 존치하는 논의 넓이는 그 세 배가량인 약 679.4ha에 달합니다. 전흥준 철원군농민회 회장은 “두루미에게도 좋고, 철원 지역의 좋은 환경이 홍보가 되면서 브랜드 가치가 올라가면 농민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실제 일본의 따오기섬인 니가타현 사도시의 경우 ‘따오기쌀’이라고 이름 붙인 쌀을 고시히카리보다 5㎏당 500엔가량 비싼 가격으로 판매하면서 농민들이 더 많은 수익을 올리고 있습니다. 생태관광지로서 널리 알려지면 철원을 찾는 관광객들도 늘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지난 13일 강원도 철원 민통선 내의 무논에 설치한 통발 속에서 나온 미꾸라지. 우렁이, 버들치, 올챙이 등 논생물들. © 김기범기자, 경향신문

또 겨울에도 논에서 물을 빼지 않는 ‘무논’을 유지하는 넓이도 약 212만6720㎡에 달합니다. 겨울에도 논에 물을 그대로 두면 미꾸라지나 우렁이 같은 논생물들이 그대로 살게 되고, 이 생물들이 바로 두루미의 먹이가 됩니다. 실제 14일 현장을 안내한 철원 생태관광협의회 최종수 사무국장이 설치해놓은 작은 통발 속에는 미꾸라지, 우렁이, 버들치, 개구리 등 다양한 생물들이 들어있었습니다. 철원 민통선 내 평야에서 사시사철 약 15도가량의 물을 뿜어내는 천연샘을 뜻하는 ‘샘통’ 40여곳에서 나오는 물을 겨울에도 논에 그대로 두면서 두루미의 먹이 공급원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무논은 두루미에게 안전한 잠자리도 제공하고 있습니다.

눈 내리는 강원도 철원 이길리 한탄강 여울의 재두루미 등 철새들 모습. © 김기범기자, 경향신문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이길리 배수펌프장 옆 한탄강 여울의 두루미, 재두루미, 고니 등의 모습. © 김기범기자, 경향신문

서울시립대 한봉호 교수와 환경생태연구실의 조사, 분석에 따르면 철원을 찾은 두루미들의 분포지역은 볏짚을 존치한 논과 무논에 집중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농민들의 자발적인 보호노력으로 인해 철원군에 도래하는 도루미류의 안정적인 서식환경이 조성되면서 두루미류의 개체군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기도 합니다. 특히 올해의 경우 두루미와 재두루미의 개체수가 이전과 비교해 2.5배 이상으로 크게 증가했습니다. 연구진은 일본으로 남하하는 개체군이 남하시기를 늦추거나 철원에서 머무르고 있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현재 철원에서 월동하고 있는 두루미는 약 600개체, 재두루미는 3000개체가량이지만 AI에 감염된 것으로 확인된 개체는 거의 없는 상태입니다. 두루미들이 일부 논에만 밀집되는 것이 아니라 농민들이 마련해놓은 무논과 볏짚이 남아있는 논에 넓게 퍼져서 분포하고 있고, 가금 농장과의 접촉도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방역당국이 철새들에게 AI 책임을 떠넘기면서 철새들을 박대하는 것과는 달리 농민들이 두루미에게 잘해주면서 두루미도 살고, 농민들도 사는 공생이 이뤄지고 있는 셈입니다.




전문가들은 현재 방역당국이 철새를 AI 전파의 주원인으로 지목하면서 철새 먹이주기를 금지하는 조치가 오히려 더 AI를 전파시키는 결과를 나을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나마 먹이주기를 통해 국한된 지역에서 월동이 가능했던 철새들이 굶주리면서 유리걸식하게 되면 오히려 통제가 불가능해지는 상황이 오기 때문입니다. 먹이가 부족해지면 질병에 노출되기도 쉽고, 철새들이 먹이를 찾아 가금농장 쪽으로 접근할 가능성도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매번 되풀이되는 AI 확산 사태 때마다 철새탓만 하는 방역당국과 철새들을 잘 대해주면서 인간과 공생하는 길을 찾는 철원 농민들 중 어느쪽이 AI 확산을 막는 정답인지 고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기사원문: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12151721001&code=940100#csidx9c153fb0ed4f99bad7106203c0fb57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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