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만든 재앙’ 조류독감(AI) 살처분 사태 두 달

편집자 주 | 지난 두 달 간 전국에서 1000만 마리 이상의 닭과 오리의 생명이 사라졌습니다. 지난 1월 17일, 전북의 한 오리 농장에서 조류독감(AI)가 발병된 이후 정부에서 AI가 발병된 닭, 오리들을 대규모로 ‘살처분’한 것입니다.

이번 조류독감은 피해 규모도, 진행 기간도 역대 최대규모로 질병재앙은 시간을 거듭할수록 커져가는 것 같습니다. 자연이 아닌 사람이 만든 재앙, ‘조류독감 살처분 사태’. 지금까지 생매장당한 수천만 마리의 생명 앞에 이제는 우리 생활방식을 돌아봐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최근 두 달 간 벌어졌던 AI 사태를 정리하여 나눕니다.

첫 AI 발병 직후, ‘철새 떼죽음’ 보도 잇따라 정부, AI의 원인을 철새로 지목
그러나 ‘떼죽음’ 보도는 오보로 밝혀져 

1월 17일 전북 고창의 한 오리 농장에서 처음으로 AI 발병 확인

처음 AI가 발병되었을 당시, ‘철새가 AI를 몰고왔느냐, 아니냐’는 논란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첫 AI가 발견된 직후 다음날, 농장 인근에서 ‘철새 1천여마리 떼죽음…AI 공포 확산’ 등의 보도가 주요 언론과 방송사를 통해 보도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다음날 ‘철새 떼죽음 보도’는 오보로 밝혀졌습니다.

이후로도 야생 철새의 집단 폐사라고 이를 만한 일은 더이상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정부는 처음부터 AI의 원인을 철새로 지목하며 전국의 모든 철새도래지에
방역을 벌이는 등 방제대책을 실행했습니다. 애초에 발병지였던 축산 농가의 환경을 제대로 조사하지 않고 철새를 원인으로 몰아갔던 것입니다.

2월 6일, 파주 문산읍에서 방역작업을 벌이고 있는 모습 ⓒ뉴스1

2월 6일, 파주 문산읍에서 방역작업을 벌이고 있는 모습 ⓒ뉴스1

 

“철새가 AI를 옮길 가능성은 없다

정부는 문제의 원인을 회피하고 있다” 국내 기구·환경단체들의 입장

· 1월 25일 철새보호 국제기구인 ‘동아시아-대양주 철새 이동로 협력기구(EAAFP)’,
‘철새는 원인이 아니라 희생자다’ 성명

“야생 조류에게 고병원성 AI는 오래가지 못하고 곧 소멸된다.
철새들은 지구상에 알려진 모든 AI에 끊임없이 노출과 감염이 돼 있어 몸에 항체, 세포 면역이 생기기 때문이다. 철새가 국내에 AI를 옮길 가능성은 거의 없으며 그 인근 지역이 많이 오염돼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서상희, 충남대 수의학과 교수

“비위생적인 공장식 축산 환경은 바이러스 진화를 위한 매우 좋은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태어난 지 33일 정도에 도축되는 육계는 빠르게 성장해 더 많은 고기를 생산할 수 있도록 품종개량이 되면서 질병에 대한 면역이 감소되었으며, 유전자를 단일화하므로
개체 간의 질병 전파를 더욱 급속화하고 있다” -2월 6일 ‘KARA'(동물보호단체), 환경운동연합 등 5개 환경시민단체의 성명 중

 

'공장식 축산'으로 운영되고 있는 한 앙계장의 모습 ⓒ오마이뉴스

‘공장식 축산’으로 운영되고 있는 한 앙계장의 모습 ⓒ오마이뉴스

 

국내 닭·오리 95%의 소유주는 가공유통대기업

정부는 막대한 예산으로 ‘닭·오리 계열화 사업’ 추진
AI의 책임은 철새들에게, ‘살처분’의 피해는 축산농에게

조류독감이 최초로 발병한 곳은 국내 최대의 가공유통업체 <하림>의 직영농장입니다.
정부는 막대한 예산을 투자해 ‘닭, 오리 계열화 사업’을 추진하고, 하림과 같은 가공유통업체는 사육농가를 지배하며 이득을 취합니다. 지난 11년간 네 차례의 AI 사태를 겪어오며 AI 발병의 원인을 ‘철새’로 지목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같은 이유가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또한, AI로 살처분되는 닭, 오리들의 보상금은 대부분 피해 농가가 아닌 가공유통 대기업들에게 지급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사육 중인 닭, 오리 95%의 실소유주가 대기업이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현실로 지난 2월 6일, 전북의 한 50대 축산농이 스스로 묵숨을 끊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정부의 예산을 받아 가금류 사육 농가를 지배한다. 사육농가에 대한 하림의 가혹한 착취는 악명이 높다. 하림과 같은 가공유통업체는 AI로 인한 일시적 어려움보다는 AI 이후 도래하는 활황기를 통해 오히려 더 큰 이득을 보게 된다. 비유하자면 포화상태에 이른 시장을 폭력적으로 구조조정하는 공황과 같은 효과를 AI가 가져오는 것이다.”
-2월 20일, 언론사 ‘민중의소리’ 사설 중 (AI 진원지 ‘종오리 농가’에 농민은 없다 ▶)

 

AI 발병 반경 3km 모두 매몰
‘대량학살’의 다른 말, ‘예방적 살처분’
닭·오리의 99.9%가 ‘예방 차원’에서 생매장

· 1월 21일 ‘예방적 살처분’ 범위 발병농가 반경 500m에서 3km로 확대
· 3월 6일 충북에서 살처분된 9천마리 닭·오리가 ‘음성’판정으로 밝혀짐, 뒤바뀐 AI 판정 논란 계속

AI가 발병되는 즉시 주변 농가 3km의 모든 닭·오리 등을 생매장하는 ‘예방적 살처분’
정부는 전국의 모든 축산 농가에 이같은 조치를 취했습니다. 그러나 최초 AI 발생 종오리 농장들만 해도 경기, 충북, 충남 등 20여 개 농장으로 오리들이 분양되었다고 합니다.
‘예방적 살처분’은 AI의 확산을 근본적으로 막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처럼 지난 9년간 네 번의 AI를 거치며 죽어간 동물은 2,500만 마리이며 이 중 99.9% 이상이 ‘예방 차원’에서 생매장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AI로 현재(3월 중순)까지 죽어간 닭·오리 등은 1085만 마리에 달합니다. 농장이 거대해지고 공장식 축산 시스템이 가속화될수록 AI 발병의 주기는 짧아졌고 ‘처분’되는 생명들은 늘어난 것입니다.

 

1월 29일, AI로 의심 신고된 경기 화성시 한 양계농장에서 닭을 살처분하고 있는 모습 ⓒ경기일보

1월 29일, AI로 의심 신고된 경기 화성시 한 양계농장에서 닭을 살처분하고 있는 모습 ⓒ경기일보

 국내 처음으로 ‘포유류’에서 AI 감염 확인AI가 사람에게도 전염될 수 있다는 위기신호· 3월 11일 충남의 한 농장에서 진돗개가 AI ‘(질병이 아닌)무증상 감염’에 걸린 것으로 확인됨

3월 11일, 닭·오리 뿐만 아니라 ‘개’에서도 AI 감염이 발견되며 ‘사람에게도 전염되는 것 아니냐’는 공포가 커져갔습니다. 이는 국내 사상 처음으로 포유류에서 AI가 발견된 것입니다. AI가 세계적 재앙인 이유는 사람과 동물 모두에게 발병될 가능성이 있는 ‘인수공통전염병’이기 때문입니다. 그간 ‘종간장벽’ 때문에 걸리지 않았던 숱한 병들이 급속한 산업사회환경을 거치며 신종 바이러스가 되어 출현하는 것입니다. (지난 30년간 신종 전염병, 50여종 중 75%가 인수공통전염병입니다)

이미 중국에서는 AI로 올해에만 20여 명이 사망했다고 합니다. 정부와 농식품부는 안전하다고 주장하지만 전 세계적 재앙이 되어버린 AI 사태 앞에 어느 국가도, 어떤 사람도 안전할 순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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