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 연구원이 된 동물들] AI 전파경로를 확인하기 위한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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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준 기자, 과학동아

수천 년 전부터 인간과 동물들은 서로 쫓고 쫓기는 관계였다. 이유는 단순했다. 잡아먹거나 혹은 잡혀먹지 않기 위해서다. 그런데 20세기 들어 이전과 전혀 다른 목적으로 동물들을 쫓아다니는 사람들이 생겼다. 바로 ‘동물추적(Animal Tracking)’ 연구를 하는 과학자들이다. 위치만 조사하는 게 아니다. 동물을 통해 오지 환경까지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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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7일 경기 안성천에 철새들이 모여 있는 모습. – 한국환경생태연구소 제공

‘안성천 다리 밑이라….’ 다리 밑에서 만나자니. 무슨 밀수 현장도 아니고…. 이런 장소에서 취재원을 만나기로 한 건 처음이었다. 주소도 없었다. 내비게이션으로 검색해 보니 ‘안성천교’라는 이름을 가진 다리가 무려 네 개였다. 취재원으로부터 위성사진이 담긴 지도를 받았다. 다행히 내비게이션에 나오는 네 개의 다리 중 한 곳이었다.

11월 5일 오전 9시. 기자는 철새를 잡아서 조류인플루엔자(AI) 바이러스 검사를 하고 위치추적기를 달아 준 뒤 풀어주는 포획 현장을 찾아가고 있었다. 차를 몰고 가면서 여러 가지 상상을 했다. ‘철새를 포획할 때 사진을 어떻게 찍을까?’, ‘새들이 꽤 많을 텐데 설마 똥을 맞지는 않겠지?’ 하지만 그곳에서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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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추적기를 단 청둥오리 – 한국환경생태연구소 제공

안성천 다리 밑에서 하늘만 바라본 하루

“철새 등에 스마트폰을 달아 주는 거라고 보시면 돼요.”

경기도 안성시 공도읍 안성천교 교각 아래서 만난 한승우 한국환경생태연구소 연구원은 철새의 몸에 부착하는 위치추적기를 ‘스마트폰’에 비유했다. 스마트폰처럼 실시간으로 위치를 파악하고, 문자메시지로 위치 정보를 전송해 주기 때문이다. 조금 과장하면 철새에게 ‘카톡’을 받는 거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메시지를 받기만 할 뿐 보낼 수는 없다.

철새의 몸에 위치추적기를 다는 이유는 AI 전파를 막기 위해서다. 닭과 오리 등 가금류를 집단폐사시키는 AI는 아직까지 전파 경로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는데, 일부 학자들은 철새가 바이러스를 옮길 거라고 추정하고 있다. 이에 철새들의 위치와 이동 특성 등을 파악할 필요성이 대두됐다.

한국환경생태연구소는 환경부와 농림축산식품부의 의뢰를 받아 2013년부터 현재까지 수백 마리의 철새들을 포획해서 바이러스 감염 여부를 검사하는 동시에 위치추적기를 부착해 이들을 추적하고 있다.

연구원들과 간단히 인사를 나눈 기자는 조심스레 주변을 둘러 봤다. 아직 오리들은 보이지 않았다. ‘좀 이른 시간이라 그렇겠지?’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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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둥오리 이동경로 – 과학동아 제공

이날 포획 대상은 흰뺨검둥오리와 청둥오리로, 일주일 전부터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포획 작전이 시작됐다. 4명으로 구성된 포획팀은 안성천 주변에서 철새들의 동태를 파악하며 최적의 장소를 물색했다. 그리고 기자가 방문하기 하루 전(4일)에는 점지해둔 ‘작전 장소’에 도착해 철새를 잡는 ‘그물포(Canon Net)’를 설치해 뒀다. 그물이 펼쳐지며 새를 사로잡는 포획도구다. 마지막으로 철새들이 좋아하는 볍씨를 뿌려 놓고 하루를 기다렸다.

그렇게 잠복해 있기를 6시간째. 철새들은 이따금씩 공중을 선회할 뿐 포획 지점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조금씩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취…, 취재할 수 있겠지?’

“철새들도 우리를 지켜보고 있어요. 그렇게 쳐다보고 있으면 오히려 다가오지 않습니다.”

포획팀 임은홍 연구원은 마치 정찰비행을 하는 것처럼 공중을 선회하는 흰뺨검둥오리를 바라보는 기자에게 주의를 줬다. 철새들도 적군의 동태를 살피듯 포획팀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핀다는 것이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낚시꾼들이 물가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철새가 다가오지 않을 이유가 한 가지 더 늘어난 것이다.

한승우 연구원은 “아무래도 오늘은 어려울 것 같다”며 “철새 포획 과정에서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다”고 말했다. 충격이었다. 기자는 새를 잡지 못할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옷이 더러워질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다. 기자 인생 6년 만에 처음 경험한 취재 실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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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2월 경남 고성 독수리 포획 지점에서 촬영한 사진. 한국환경생태연구소는 멸종위기종인 독수리의 생태 파악을 위한 위치추적도 진행하고 있다. – 한국환경생태연구소 제공

스마트폰으로 우리 철새 이동경로 확인한다

비록 철새를 직접 포획해서 위치추적기를 부착하는 과정을 목격하지는 못했지만 기자는 포획팀으로부터 위치추적기의 활약상에 대해 자세히 전해들을 수 있었다.

연구팀은 2013년부터 지금까지 청둥오리와 흰뺨검둥오리, 멸종위기종인 독수리와 저어새 등 400마리 이상의 철새에 위치추적기를 부착해 왔다. 포획을 하는 장소는 전라북도를 가로지르는 만경강과 경기 안성천 등 전국 20곳이 넘는다. 최근에는 몽골에서도 독수리와 재두루미, 큰고니 등의 철새에 위치추적기를 부착했다.

3년 동안 철새들의 움직임을 모니터링 한 결과, 이전에 몰랐던 사실들이 속속 밝혀졌다. 예를 들어 남한에서 겨울을 지낸 청둥오리가 중국 만주나 몽골로 돌아갈 때 지금까지는 중간기착지에 며칠을 머물며 휴식을 취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확인 결과 청둥오리 중에는 하루 만에 남한에서 압록강까지 날아가는 개체도 있었다. 다른 개체들도 2~3일 내에는 한반도를 벗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다른 성과는 멸종위기종인 저어새의 이동경로와 서식지를 명확하게 밝혀낸 것이다. 한국환경생태연구소는 문화재청의 의뢰를 받아 국내에서 태어난 저어새의 몸에 위치추적기를 부착하고 이동 경로를 추적해 2014년 10월 발표했다.

이전까지 저어새는 주로 제주도와 대만, 일본, 홍콩 등지에서 겨울을 보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는데, 위치추적기를 부착하고 확인한 결과 중국 상해 인근에도 서식지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동 경로도 한국에서 중국으로 바로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북한에서 세 달 가량 머문 뒤 다시 중국으로 내려가는 형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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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추적기를 부착한 저어새. 추적 결과 중국 상해 등 새로운 서식지와 이동 경로가 밝혀졌다. – 한국환경생태연구소 제공

한국환경생태연구소가 개발한 위치추적기는 무게가 27g 정도밖에 안 된다. 때문에 가창오리 같은 작은 종을 제외하면, 동물의 몸에 무선추적기를 달 때 국제기준으로 삼는 ‘몸무게의 3% 미만’ 규정에 위배되지 않는다.

특히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신호와 함께 휴대전화 기지국 통신망도 사용하기 때문에 위치를 알려주는 오차범위가 GPS만을 이용했을 때(50m 안팎)보다 5배 정밀(10m 안팎)하다. 게다가 가격도 1000만 원을 호가하던 기존 장비에 비해 5분의 1 수준(180만 원)으로 저렴하다.

한승우 연구원은 “위치추적기술이 없거나 너무 비쌌던 과거에는 철새에 가락지를 끼워서 어디에 있던 철새가 어디서 발견됐는지를 확인하는 정도였다”며 “기술 발전 덕분에 조류의 상세한 이동경로와 서식지 등 생태 특성을 알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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